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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성장기 사회연대경제의 도약을 위한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6.2)
2025.06.05

최근 3~4년 사회적경제 관련 공공 정책은 악화되었지만, 이와 별개로 민간의 인식과 저변은 넓어졌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젠 누굴 만나든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해 공들여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고, 기업이 이윤 아닌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언쟁으로 빠져들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2007년부터 약 15년간 민관이 힘을 합쳐 추진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의 효과가 길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류 경제시스템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교정하려는 흐름이 세계적으로 크게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3~4년의 경험을 갈무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사회적경제 관련 공공 정책의 악화는 단순히 예산과 프로그램의 축소로 국한되지 않았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평가와 시선은 그간 쌓아 온 ‘사회적 자본’을 훼손시키면서 시장 내 다양한 주체와의 파트너십을 제약했다. 참여 주체 간 신뢰와 협력을 혁신의 기제로 삼는 사회적경제 조직으로서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약해지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부정적 태도로 일관한 정부의 정당성이 허물어지면서 이제 사회적경제도 그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2~3년 우리가 세심하게 복원해야 할 대상은 사회 안에 자리한 사회적경제의 역할에 대한 신뢰, 즉 사회적 자본일 것이다.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법적 체계와 정부 정책을 딛고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런 성장 경로의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늘 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그리는 모습의 생태계를 만들려는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의 발걸음은 계속되었고, 공공에서 사회적경제라는 말이 사라지다시피한 기간에 더욱 또렷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역의 사회적경제 인프라들은 지역 내 이해관계자들의 지지기반을 예민하게 인식하면서 사회적경제 원리로 포괄할 수 있는 경제주체의 범위를 새롭게 해석하고, 보다 큰 눈으로 자원의 흐름을 읽어 내기 시작했다. 주민참여 에너지 협동조합과 사회주택 기업들은 설득력 있는 사례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역량을 입증하고 시대적 필요에 호소하면서 적대적인 환경을 극복해 왔다. 풀뿌리 기금을 조성해 자조 기반을 만들려는 시도가, 교육과 상담 등 공공의 역할로 치부했던 인프라를 스스로 세우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앞으로 이런 민간의 이니셔티브를 존중하고 키워가려는 사려 깊은 노력 속에 사회적경제 인프라와 프로그램들이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함께 경험하고 학습한 것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가운데 위로부터의 권위보다 아래로부터의 역량을 중시하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금융 : ‘금융 접근성 제고’에서 ‘임팩트 규모화’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중앙정부의 ‘사회적금융 활성화 정책’ 시행으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금융 접근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정부가 제공하는 신용보증을 기반으로 시중은행의 대출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정책자금 매칭 출자로 소셜벤처에 투자하는 임팩트 펀드 결성이 촉진되었다. 명시적인 활성화 정책이 중단된 이후에도, 사회적경제 기업들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벤처기업 등 유관한 정체성으로 기존 금융 인프라에 접근할 수 있었고, 낯설다는 이유로 인해 발생하는 접근성 제약은 줄어들었다. 주류 금융으로 해소되지 않은 대안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사회적’ 금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사회적 금융의 포지션이 이동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향후 5년 사회적경제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금융 영역은, 사회적경제 기업과 사업의 규모화를 위한 ‘성장 자금’, 그리고 주거, 에너지, 지역 자산화 등 사회목적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프로젝트 자금’이다. 현재 자본 시장에서 성장 자금은 ‘벤처 투자’의 형태로 공급되는데, 1인 1표 방식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주식회사이더라도 배당에 제약이 있는 인증 사회적기업은 벤처투자조합의 투자 기피 대상이다. 사회적 금융 활성화 정책 1기가 사회적경제 조직의 ‘금융 접근성 강화’라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면, 2기 정책은 사회투자 활성화를 통한 ‘임팩트 규모화’를 목표로 할 필요가 있다.

임팩트 규모화를 위한 이해관계자들의 역할 

임팩트 규모화를 위해서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양질의 자금 수요가 형성되어야 한다. 연합회와 지원기관이 협력해 돌봄, 에너지, 주거 등 역량과 모델이 검증된 분야를 중심으로 유효한 사업 모델을 도출하고, 다양한 사회적금융 중개기관들이 상호 조율하여 수요에 맞는 금융 상품을 개발하는 정도까지 협력이 일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 사회적경제 기업: 시장과 정책의 변화 속에 기회 요인을 읽어 내어 성장 전략을 수립하고, 사업 계획 및 자금조달 계획 구체화
  • 사회적경제 연합회: 회원조직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자원 보유자와 협력해 표준모델로 정립. 확산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 마련
  • 사회적경제 지원기관: 사회적경제 기업 및 연합회의 사업개발 과정 지원, 시장정보 제공 및 조사, 자금조달 계획 수립을 위한 재무 컨설팅 지원
  • 사회적금융 중개기관: 사회적금융 상품 설계 및 운영 시 성장지원 관점 강화, 임팩트 액셀러레이터 역량 개발, 새로운 투자 기법 개발, 유관기관 역할 분담 및 조율

사회투자 활성화 정책 제안

23개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으로 구성된 ‘사회적금융포럼’은 지난 4월 「제21대 대선 사회적금융 활성화 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회투자 활성화와 관련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민관 협력 사회투자 모펀드 조성: 활동성이 저하된 공공자금이나 정책 목표가 일치하는 공공기금을 활용해 사회투자 마중물 자금 공급, 사회투자 모펀드 조성 지원
  • 공익법인 사회투자 참여 지원: 공익법인 정관에 투융자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도 투자/융자의 방식으로 주목적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 (공익목적투자제도 도입)
  • 소셜임팩트펀드 운영 개선: 사회적경제 기업 투자를 주목적으로 하는 벤처투자조합의 경우, 창업기업 업력기준 완화, 신주/구주 혼합 취득 허용, 협동조합 출자 허용
  • 신협 출자 허용: 신용협동조합의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출자 허용

‘사회적 상상’의 힘에 기대어 보기

작년 가을에 한글로 번역 출간된 『사회적 상상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에서 제프 멀건은 사회적 상상이 약화되는 현실, 바람직하며 현실적인 미래 비전 부재의 문제에 주목했다. 이런 현상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느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심화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 결과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차지해야 할 공간은 반동과 ‘더 나은 과거’의 추구, 기술 중심의 협소한 미래 비전, 현재만을 방어하려는 태도로 가득차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금융에 대한 우리의 접근도 그렇게 움츠러 들어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회적 상상’의 힘에 기대어 조금은 명랑하게 이 글을 마무리해 보려 한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재)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은 2019년 사회적경제 도매기금을 표방하고 출범했지만 당초 목적한 기금의 약 1/10을 조성하는데서 그쳤다. 하지만 다양한 사회적금융 수요에 대응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운영하며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0년, 또는 15년 후에 지역마다 이런 재단들이 하나씩 생겨나 운영된다면 어떨까. 참고할 만한 사례로 ‘부산형사회연대기금’이 있다. 재단법인 부산형사회연대기금은 부산은행 노사 및 BNK금융그룹, 부산항운노동조합, 부산항만물류협회, 부산항만공사 등 지역 기업/노조 등의 참여로 2019년 설립되었고, 누적 출연금은 약 98억 원이다. 공동 조성한 재원으로 지역의 소상공인/중소기업, 사회적경제기업, 공익활동가, 이주노동자, 청소년, 문화예술인 등을 지원한다. 전국 단위 조직들과 협력관계를 형성해 분야별 지원 역량을 내재화하고 지역사회의 수요에 좀 더 밀착된 사업들을 전개한다. 지역마다 200~300억원 규모의 사회연대기금이 하나씩 생겨나려면 무얼 해야 할까.

사회적 상상의 필요성을 주장한 제프 멀건은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현상도 있음을 지적하며, 정치권력의 핵심 쟁점에 가까이 다가간 아이디어일수록 의도한 방식대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우리들은 당분간 새로운 정부와 함께 열리는 새로운 활동 공간을 탐색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다양한 구상과 협력을 제안하고 실현시켜 가게 될 것이다. 순풍이 불 때 해야할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 – 사회적경제를 합의적 의제로 위치시키는 것을 포함해 –을 놓치지 않고 해내다 보면 좀 더 크고 탄탄한 기반 위에 설 수 있게 되지 않을까.